이 글은 사이버오로 홈페이지(cyberoro.com)에 [조선사바둑전]과 [대륙풍]을 연재하고 있는 소설가이자 바둑사학자 이청 씨(얼굴사진)의 기고문이다. 그가 사료를 발굴해 미처 가공하지 않고 날것으로 보관하고 있는 자료의 창고, 서고(書庫)에는 알려지지 않은 조선시대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바둑이야기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 (편집자 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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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註) 이 글은 조선실록 승정원일기 회조일사 일사유사 이향견문록 문무자문초 추재기이 호산외기 유하집 기객소전 등에서 필자 나름으로 정리한 것을 밝혀둔다.물론 18세기 위항 문인들의 문집 발굴을 해낸 학계의 성과물의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광정(1674-1756)은 망양록에서 인재는 다만 세상의 흥망과 더불어 한때의 인재일 뿐이라 했다. 인재는 특별한 곳에서 찾아지는 무엇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곳에 항상 있는 그것이란 말이다. 세조는 주변에서 3류 인간들을 모아 정권을 잡았고 당나라  측천무후도  시장판 3류들을 모아 정권을 거뜬하게 건사해 내어 이광정의 인재론의 근거가 된다.


이광정의 인재에 대한 범위를 성대중은 세상에 다시없는 기남자(奇男子)라는 묘사로 확대시킨다. 시대의 인재는 문(文)을 알고 학(學)을 아는 것만이 아니라 '금기서화사승'까지도 망라한다는 것이다. 바야흐로 바둑으로 시대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이 조선 중기로 오며 갖추어진 것이다. 유본학은 나라안이 온통 국기(國碁)를 한번 보는 것을 소망이 되었다 하고 있다.


조선실록에 바둑 고수를 지칭하며 최초로 등장한 인물이 방복생이다. 구종지의 소개로 양령대군의 측근이 되어 그의 실각의 단초가 된 사람이다. 방복생을 이어 등장한 바둑 고수가 조순생(趙順生)이다. 그는 한양 조씨로 마정에 능해 겸사복을 거쳐 병조참의에 이른다. 실록에는 할 줄 아는 것이 바둑뿐인 자가 벼슬이 높다하여 언관들의 질타가 이어진다. 그러나 세종은 오불관언이다.


조순생의 후원자는 세종과 안평대군이다. 안평대군은 세종이 죽자 조순생을 지근에 두고 기꺼이 후원자를 자청한 듯하다. 안평이 바둑과 그림 등에 조예가 있던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조순생은 안평대군의 난에 연루되어 처형되는 운명을 맞는다. 조순생이 바둑 외적으로 안평의 거사에 깊게 참여했던 것이다. 조순생은 충남 유구에 있는 물금사당에 김종서 안평대군 이개 하위지 등과 함께 모셔진 6인 중 한 사람이다.



방복생 조순생을 통해 우리는 바둑의 고수들에게 당대의 유력자들이 후원을 자청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비슷한 시기 명나라를 다녀간 서양인들의 눈에 포착된 바둑 고수에 대한 예우를 알 수 있는 기록이 있다.


-놀이의 규칙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사람은 존경의 대상이다. 그와 바둑 한판을 두려면 특별한 의식을 해야 한다. 고수는 예술의 대가처럼 받들어 진다. (제름케롤루에강)











 
조순생이 세종과 안평이라는 당대 최고의 후원자들의 비호를 받으며 성장했다면 김도수의 기자전( 碁者傳 )에 포착되어 소개된 덕원령 이서(1447-1498)는 자신이 기객이자 후원자였다. 세조의 서장자로 집안 행사에 3천명의 군중을 불러 모을 정도로 재력과 배포 그리고 바둑수까지 출중한 사람이다. 그의 별명이 일수기(一手碁)였을 정도다. 이서는 명나라 사신들까지 그의 바둑 수에 경기를 일으켰다고 전하나 실록에는 그의 바둑 기록이 전하지 않는다.
김도수 [기자전]. 동국 일수 덕원령에 대한

기록이 보인다.












이서의 뒤를 이은 사람이 윤홍임(尹弘任)이다. 윤홍임은 말년에 이서를 이겼다고 한다. 윤홍임은 생몰년이 전하지 않는다. 다만 유찬홍(1626-1697)에 계보를 이어주는 징검다리로 등장한다.

유찬홍은 술부라 불리는 사람으로 단숨에 윤홍임을 꺾고 조선의 국수가 된다. 그의 바둑은 조선 중기를 뒤흔들고 남았다. 그러나 악질적인 술버릇과 기행으로 지탄의 삶을 산다. 그나마 그의 천의무봉한 바둑을 아낀 몇몇 사람들의 사랑으로 겨우 생존을 한다. 그를 문헌에 포착해준 홍세태가 그런 사람이다.



유찬홍의 의발은 숙종 때의 고수 장문익에게 이어진다. 장문익은 청나라 사신들이 올 때마다 그들의 바둑 상대로 영접도감에 불려간다.
조수상 추재집.
본인이 고수이면서 유찬홍의

기록을 담고 있다.

승정원일기에는 장문익이 영접도감행이 숙종에게 두번이나 보고된다. 장문익은 청나라 사신단에 군관 신분으로 가 만력제(신종)의 친필 휘호를 얻어와 숙종을 감동시킨다. 숙종은 궁궐 안에 비밀리에 만력제의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고 있던 중이었다. 일개 군관 신분인 장문익이 만력제의 친필을 얻어온다는 것은 난망한 일이다. 그러나 장문익의 바둑은 청나라 안에서도 통했다. 조선의 어떤 고위 관료들도 하지 못한 일이다.


장문익의 계보는 다시 한대수로 넘어간다. 영조실록에 등장하는 고수다. 조정은 요동에 청의 흠차대신이 귀양을 오자 바둑 고수 한대수를 그의 귀양지로 파견을 보내어 관계를 돈독히 한다. 외교전이 따로 없다. 영조 정조 시대에 오면 바둑계는 엄청나게 신장된다. 고수 군(群)이 전국으로 퍼져 향기(鄕碁), 도기(道碁), 국기(國碁)로 분류될 정도다.









이서구 [기자소전]. 정운창 김종귀의 에피소드가 담겨 있다.

이 바둑의 춘추전국 시대를 통일한 사람이 김종귀다. 19세기 위항 문인들이 집중적으로 주목한 고수가 바로 그 사람이다. 김종귀는 아예 바둑의 신이라 했다. 이 시대 전국적으로 활동하던 바둑의 고수들은 수십 명이다. 김한흥 이학술 고동 이필 조수삼 정박 양익분 정운창 김석신 등의 쟁쟁한 고수들이 각축을 벌인다.

이들의 포위를 뚫고 우뚝 선 사람이 정운창이다. 이서구는 기자소전에서 바둑의 신 김종귀와 정운창의 의발의 전달식을 이렇게 기록한다.


-정운창은 당대 최고의 고수가 김종귀, 양익분이란 소리를 듣고 둘 중 조금 더 낫다는 김종귀를 찾아 한양길에 오른다. 정운창은 단숨에 한양까지 간다. 그러나 김종귀는 평북 순찰사를 따라 기행중(碁行中)이었다. 정운창은 한양에서 정박(1715- 기장 현감 역임) 등과 바둑을 두어 여비를 마련하고 북행을 자청한다. 그러나 해주 평양을 거쳐 안주까지 가도 김종귀의 행적은 찾을 수 없었다. 정운창은 한 주막에서 자탄을 한다.


ㅡ士之抱才器而相遇猶如是乎?吾不忍返矣.


재능을 지닌 선비가 그것을 알아줄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마음이 이와 같을 것인가? 내 차마 걸음을 돌릴 수 없구나. 정운창은 바둑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바둑 외에는 그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호적수가 있다기에 천리 먼길을 걸어 관서 땅에 와서 그를 만나지 못하는 것이 오직 안타깝다. 그러나 뜻이 있기에 길도 있다. 정운창은 끝내 관서의 어느 옹벽진 고을에서 김종귀를 만난다. 이서구는 이 장면을 이렇게 묘사 하고 있다.


ㅡ於是左右設奕具進子樞兩階布陣均道一再轉.


드디어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앉았다. 바둑돌을 서로 포진하고 보니 팽팽했다. 일전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정운창은 눈물이 났다. 얼마나 기다려온 순간이던가. 조선 제일의 고수를 만나 그를 꺾는다면 이 자리에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믿는다. 바둑은 시작되었고 정운창의 운행이 물 흐르듯 유연하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김종귀의 운행이 부자연스럽다.


이서구의 이 기록은 우리(순장) 고대 바둑의 형식을 보여 주는 희소한 기록이다. 진자(進子) 하고 양쪽이 포진(布陳)을 했다고 한다. 조금 더 연구가 필요한 과제이기는 하지만 일단, 흑백 돌을 8개씩 놓고 시작하는 바둑의 형식을 증언하는 기록이다.


모름지기 프로의 길이란 말이 있다. 자신을 팔아 돈을 잘 버는 것이 프로가 아니다. 프로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한가지 일에 조건 없는 도전을 하는 사람이다. 정운창은 가난한 보성의 천민 출신으로 바둑이 좋아 오직 바둑의 길을 걸어 마침내 조선 제일의 고수와 마주앉는다.


정운창은 바둑으로 명인의 길을 보여준 사람이다. 명인의 길은 곧 프로의 길이다. 이 대국은 정운창이 이겼다. 그리고 정운창은 다시 김종귀를 통하여 바둑의 더 깊고 오묘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 길에 온몸을 던져 버린다.











 
정운창의 제자가 김석신이다. 김석신은 정운창에게 천 판의 바둑을 두고 드디어 그를 넘어섰다고 했다.



정박은 도전을 해온 정운창을 맞아 먼저 자신의 제자들을 내세워 시험을 해본 다음에 대국을 하고 깨끗하게 패배를 승복하는 멋도 보여준다.

이필은 바둑을 점술과 연관시켜 전개하는 특이한 모습을 보여준다. 정조의 앞에서 한껏 그의 재주를 뽐내기도 한다.



김석신의 계보는 드디어 구한말의 고수 김만수로 이어진다. 이들 고수들의 뒤에는 당대의 대단한 인물들이 후원자로 나선다. 김조순 김문근 김좌근 등 안동 김문의 종장들은 말할 것 없고 조두순 이하응 등 막강한 인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으며 바둑의 예인으로 대접 받는다.
장지연 [일사유사].

바둑고수 이필의 기록이 있다.

조선은 바둑의 유토피아라 할만하다. 하여 조선 바둑의 국수의 계보를 우선 그림자나마 그려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첫걸음을 뛰었다 할 것이다. 앞으로 이 국수들의 모습을 한 명씩 찾아 줄 참이다. 이청 칼럼 바로가기 클릭!


조선 國手의 계보도













시대
태종
--->세종
->성종
->선조
->인조
->숙종
--> 영정조 ---
----> 순조 --->
철종 고종

















인물

방복생
조순생
이서

윤홍임
유찬홍
장문익
한대수
김종귀
정운창
김석신
김만수















     

   

     









      서원령 한순     정박 고동 이학술 김한흥 이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