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번째



재미없는 이야기 - 1

 

Written by. H님

 

 

 

준수는 눈을 깜박깜박 거리며 주위를 휙휙 둘러보았다. 왠지 안개가 슬며시 몰려오는 것 같다. 준수는 소름이 돋았는지 팔 주위를 매만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사방이 침침한 색깔인 것 같다. 흰색이지만 어두운 기분이다. 안개 때문에 그런 걸까…. 준수는 멈춰있던 다리를 슬슬 움직이며 돌아다녔다. 상자 같은 곳에 갇혀있어서 공간이 좁은 줄 알았는데 돌아다녀 보니 꽤나 넓은 것 같다. 아니, 넓은 것이 아니다. 끝도 없이 이어진다. 가도 가도 길이 생긴다. 뭐야 이거……. 준수의 미간에 내 천(川)이 새겨졌다. 이곳은 어디이길래 길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걸까. 왜 사방은 이런 색이지? 뭐야? 여긴 어디? 난 누구? 흰 방에만 계속 있으면 미쳐버린다는 게 사실일까. 준수는 점점 흐리멍텅해지는 정신을 바로잡았다. 기분이 나빴다.

 

굴하지 않고 계속 걷고 있는데 무언가 자신의 뒤를 쫓아오는 것 같다. 준수는 난데없이 멋대로 움직이는 다리에 놀라기는커녕 순순히 응하며 따랐다. 다리가 빨라지니까 머리회전도 빨라진 걸까. 열심히 최대한의 속도로 달리던 준수의 눈에 눈물이 나왔다. 연기를 해야될 것 같다. 분명히 뒤에서 누군가가 따라오고 있다. 그것도, 저를, 잡으러.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의심할 법도 있건만 준수는 그저 응하고 있을 뿐이었다. 다리는 달리고 있으니까 저는 달리는 것 뿐이고 누군가가 자신을 잡으러 오니 더 빠르게 달리고 있을 뿐이고 눈에서는 눈물이 나오니 그저 흘릴 뿐이고. 이와중에 혼돈이 일어난 건지 뭔지는 몰라도 앞에 누군가가 휙 하고 생겨났다. 뛰쳐나온 것도 아니고 생겨난거다. 속력을 늦추며 준수는 익숙한 얼굴을 보고 매달렸다.

 

 

" 살려줘, 창민아! "

" ……뭐야? "

" 살려줘! 살려줘! "

 

 

자신의 입에서 느닷없이 그런 말이 튀어나오다니. 정신에 착란이 일어난 것 같았지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준수다. 다리도 제멋대로 눈도 제멋대로 인데 입이라고 제멋대로가 아닐 리가 있나. 입에서 나오는 대로 뱉고 있는 준수의 머릿속은 아무 생각이 없었다. 계속 순응만 하는거다.

 

 

" 빨리 잡아 "

" 살려줘, 창민아아! "

" 진짜 잡아야지 이번엔 "

 

 

제 3자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준수는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몸을 틀었다. 얼굴이 잘 안 보인다. 하지만 몸은 보였다. 들고 있는 것도 보였다. 헉. 저거 칼 아니야? 식겁한 준수는 벌벌 떨었다. 칼을 왜 들고 있는 거지? 그런데 몸이 또 제멋대로 움직인다. 2인자도 아닌 제 3자에게로 몸이 움직이는 것이다. 그에 따라 준수는 발버둥을 쳤다. 물론 머릿속에서만. 몸은 그대로 순응했다. 정신상태가 착란에 이어서 공황에 빠지기 시작했다. 오 마이 프레셔스. 골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 어떻게 요리 해줄까~? "

" 꺄앙! 칼 바꿔! 바꾸란 말야!! "

" 음? 이거? 버리지 뭐. "

 

 

칼이 날라 갔다. 헐…. 준수의 상태가 완전한 패닉(panic)에 이르렀다.

 

 

" 안 아프게만 해줘요! "

" 안 아파, 안 아파. "

 

 

뭐가 안 아픈건데? 계속해서 멋대로 움직이는 입을 향해 물었다. 답이 나올 리가 있나. 눈물이 계속해서 차오른다. 상대방의 얼굴이라도 보이면 좋을 텐데….

 

 

" 빨리 잡는게 좋을걸? "

" 알아, 알아. "

" 흐어어엉, 제발 안아프게에에!! "

" 진짜야. 나 진짜 잘한다니까? "

 

 

그니까 뭘.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걸까. 자신은 그저 이상한 공간에 와서 걸어다녔을 뿐인데. 이상한 사람이다. 이상한 창민이다. 준수는 상대방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이건 제 의지다. 이제 그 가려진 당신의 얼굴을 볼 수 있겠지? 웃음이 나올 법도 하면서 울음소리가 희한하게 변했다. 그 소리에 두 명의 사람이 준수를 쳐다보았다. 괜히 긴장한 준수는 고개를 들어 상대방의 얼굴을 보기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의지대로 되지 않는다. 또 몸이 제멋대로 움직이려고 한다. 망할놈의 몸새끼…….

 

 

" 흐어엉, 진짜죠? 진짜 안아파요? "

" 그렇다니까? 으흐흥. "

" 진짜? 진ㅉ...너,너,너,너어어어어!!!! "

" ……? "

" 바,바,바,바규천?!?! "

" 난 바규천이 아니라 박유천인데. "

 

 

준수는 다가갔던 몸을 엄청난 정신력으로 떼어냈다. 숨이 차오른다. 허억, 헉, 헉. 유천이 씨익 웃는다. 진짜 안 아프다니까. 이제 믿지?

 

 

" 뭘 믿어어어!!! "

" 나 말이야, 나. "

" 야, 빨리 좀 해라. 시간 없거든? "

 

 

창민이 시간이 없다며 재촉했다. 그리고는 새로운 식칼을 가져온다. 그에 준수는 그대로 바닥에 누워버렸다. 넉 다운(knock down). 어이없게도 그 자리에서 기절한 것이다. 준수는 어두컴컴해지는 주위를 보며 생각했다. 꿈에 박유천이 나오다니…심창민이 나오다니…불행한 하루야…….

 

 

 

 

 

 

 

 

 

 

" 헉…!! "

눈을 번쩍 뜨는 준수다. 슬그머니 눈꺼풀을 올리는 것도 아니고 '반짝'뜨는 것도 아닌 '번쩍'이다. 말 그대로 번쩍 눈을 뜬 준수는 주위를 휘휘 둘러보았다. 아침이다. 햇살이 창문을 통하여 준수의 방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덕분에 방안이 하야면서도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준수는 왜 자신이 놀라면서 깨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내가 왜 놀랐지? 꿈을 꿨나…. 무의식적으로 뒷목을 쓸던 준수는 인상을 찌푸렸다. 손끝에 반짝 반짝한게 묻어나온다. 땀이다.

 

 

" 에이씨……. "

 

 

휴대폰 시계를 봤다. A.M. 6:34. 준수는 나지막이 읊조렸다. 방학인데…이게 뭐야……. 다시 잠을 자려던 준수는 드르르 거리는 소리와 함께 몸에도 진동이 오는 것을 느꼈다. 이 시간에 누구야 대체! 짜증이 올라온 준수는 신경질적으로 슬라이드를 올렸다. 발신인이 누구인지 확인도 하지 않는다. 귀에 대자마자 들려오는 목소리가 없었다. 준수의 짜증 게이지가 좀 더 올랐다.

 

 

" 누구세요! "

" …… "

" ……누구세요? "

" …… "

" 전화 끊습니다. "

" …우와 빠른거봐 "

" …? "

 

 

누구야 얘. 준수는 휴대폰 액정을 살펴보았다. 글자가 보인다. 박유천.

 

 

" 너 뭐야 "

" 누구긴~ 애인이ㅈ, "

 

 

- 탁

슬라이드를 바로 내려버리는 준수다. 그의 얼굴은 짜증 게이지가 거의 다 채워졌을 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인상을 찌푸리고 내 천(川)자가 새겨지고 볼은 살짝 달아올랐다. 이 아침부터 전화질이야…. 이불을 뒤집어쓰는 준수다.

 

 

- 드르르

" 아씽!!!! "

 

 

배터리를 아예 빼버릴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심한 것 같다. 준수는 선심쓰 듯 슬라이드를 열고 전화를 받았다.

 

 

" 여보ㅅ, "

" 네 여보다! "

" ……연결이 되지 않아,"

" 아냐아냐아냐 준수야!!! "

" …아침부터 전화야아아앙!!!! "

" 미안 준수야아… "

" 이씨잉… 급한일이써? 후아암 "

" 응 "

" ……응? 뭔데 "

" 나 심심하니까 좀 이따 집으로 와라 "

" 삐 소리 후 소리샘으로, "

" 진짜야 준수야!! 꿈도 이상한거 꿨어! 같이 토론하자 "

" …진챠아…유치뽕짝이야…꿈이나 토론한대… "

" 허헝. 오는거지? 오는걸로 알고 있을게~ 너 기다린다~ "

 

 

전화가 꺼졌다. 준수는 멍하니 자신의 휴대폰을 내려다봤다. 총 통화시간이 1분 13초다. 1분 13초…. 60초 하고도 13초를 더한 숫자다. 준수는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10초에 얼마더라……. 그리고 그대로 준수는 잠이 들었다.

 2번째




재미없는 이야기 - 2

 

Written by. H님

 

 

 

- 쾅쾅

누군가가 문을 치고 있었다. 준수는 약간의 뒤척임만 있을 뿐 일어나지 않았다. 쿵쿵.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거세졌다. 준수야아!! 이번엔 소리도 플러스다. 하지만 준수는 여전히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팔을 은근히 흔들며 뭔가를 치우는 포즈를 한다. 휘휘 하며 저리가라는 포즈다. 문을 두드리고 있는 누군가에게 보내는 신호인 것 같다. 무의식적으로 팔을 동선이 크게 움직여 주다가 침대 나무쪽에 부딪혔다. 그제서야 일어나는 준수다. 에이씨…….

 

준수의 귀에 드디어 소리가 잡혔다. 멍하니 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바라보다 경악된 얼굴을 한다. 무척이나 놀란 얼굴이다.

 

 

" 도,도둑? "

 

 

그러나 도둑이라기엔 자신의 이름을 너무도 잘 알고 있고 또 친숙하게 부른다. 뭘까 과연…. 어떻게 자신의 이름을 저렇게 친숙하게 부르는 걸까. 솔직히는 자다 일어나서 비몽사몽이라 지금 들려오는 소리도 확실히 친숙한 목소리인지 생판 모르는 남의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눈을 얇게 뜨고 시계를 쳐다보는 준수다. 눈꼽이 좀 낀 물방울 모양의 눈이 크게 띄였다. 5시. P.M. 5:00. 휴대폰을 확인하는 준수의 손이 다급하다. 슬라이드를 열어보니 문자들이 와있고 부재중전화도 몇건 있다. 이름은 죄다,

 

 

" 바규처언…. "

 

 

질린다는 표정을 지은 준수가 침대에서 꼼지락댄다. 아마 나가기 싫은 듯하다. 쿵쿵대던 문소리가 멈추고 삑삑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저건 분며히 바규천이겠지? 바규천일꺼야. 제풀에 지치면 가겠지 머.

 

 

" 헉… "

- 삐,삑,삑,삑

" 어떻게…비밀번호…를… "

- 삑,삑,탁

" …… "

 

 

입을 뜨억하니 벌린다. 서,설마 바규천이 아니라 나쁜놈이면 어떠케? 헐…. 사고회로가 정지되는 느낌을 받은 준수는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자신의 방안을 살펴보았다. 숨을 곳을 찾고 있다. 어디가 좋을까…. 여기저기 시선을 훑어보다가 숨을 곳이 없는 듯 몸을 길게 펴고 침대위로 바짝 눕는다. 최대한으로 숨을 죽이거나 참고 눕는다. 이것이 살길이라는 듯이 아주 힘을 쫙 빼버린다. 그리고 그 위로 이불을 휙휙 바지런히 펴놓는다. 이것이 김준수가 머리를 굴려서 나온 아이디어라고 보면 되겠다.

 

 

" …헉 들어오고 있잖아! "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는지 준수가 숨을 죽였던 것을 최대한 더욱 더 누른다. 하지만 곧 색색 대며 숨이 밖으로 올라온다. 너무 힘든가 보다. 아무래도 엎친데 덮친격으로 이불속인데다가 덥기까지 하니 김준수의 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드디어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 ㄱ…주……? "

 

 

준수는 문소리가 들려온 것을 상기하며 숨을 참기 시작했다. 그 덕에 이불속안은 덥지 숨차지 놀랐지 사고회로가 정지된 준수는 방금 뭔가 말이 들려온듯 싶었지만 무시하고 계속 그 자리에 동상처럼 굳은 채로 누워있었다. 어서 나가란 말야! 여긴 아무도 없어! 없다고오! 아까 도둑이 아니라고 한건 내 실수야! 널 도둑으로 인정해주께! 그니까 가! 가란말야!

 

 

" 흐음……. "

 

 

한편, 유천은 대놓고 나 여기있소이다 라며 광고를 하는 준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기요 김준수씨. 아무리 그렇게 한다고 해도 누구든지 사람이 있다는 것은 다 알 수 있거든요? 유천은 비죽이 입술을 내밀었다. 그렇게도 내가 싫었냐? 어? 아까 전화한건 어디로 사라졌대? 유천은 마음이 상했다. 감히 날 무시했겠다? 그대로 유천은 준수에게 복수를 해주고 싶었으나 그러면 너무 재미가 없었다. 고로, 유천은 머리를 굴렸다. 머릿속이 아주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돌이 굴러가는 소리, 돌고래가 꺙꺙 거리는 소리가 아닌 아주 제대로 돌아가는 것처럼 유천의 표정은 심오하고도 심오했다. 마치 이것은, 이 일은 무시할만한 것이 못 되고 오히려 아주 장대한 장거라도 한다는 듯이.

 

유천은 슬그머니 침대 곁으로 다가갔다. 준수는 이불속에서 사람의 말은 안들렸지만 물건의 흔들림이나 미동은 느껴지는 것인지 동물적인 육감으로 움찔움찔 대며 더더욱 조심조심 하고 있었다. 그런 준수의 반응을 본 것인지 유천은 희미한 소리로 슬며시 웃음소리를 내뱉었다. 키히흐. 요상한 웃음소리였다. 하지만 유천은 자신이 소리를 내고도 못 들었는지 계속 희한한 웃음소리를 흘릴 뿐이었다.

 

준수는 이불속에서 아주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이놈의 도둑님하는 왜이리 안가시는지. 차라리 물건만 훔치고 갈 것이지 왜 이렇게 오래 계시는 것인지. 준수는 심통이 가득한 표정으로 누워있었다. 하지만 곧 침대의 흔들림을 동물적인 감으로 캐치해내자마자 심통 가득했던 표정을 풀고는 다시 뻣뻣하고 굳은 동상으로 되돌아 왔다. 그 동물적인 감으로 흔들리는것을 느낄때마다 준수는 움찔움찔 거렸지만 본인은 모르는 것 같다. 다만 속으로 혼자서 나는 죽지않아 나는 살수이써 괜차나 즌스야 하며 달랠 뿐이었다.

 

 

" 아무도 없나? "

 

 

이번엔 목소리다. 준수는 그 목소리를 듣고는 어찌라 굳었던지 너무 심하게 굳어서 몸을 슬슬 떨기 시작했다. 정작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생각지도 못하고, 준수는 그저 난 안보일꺼양!!! 하며 자신을 달래고 있었다. 자신의 동물적인 감으로, 육감으로. 목소리의 주인은 알지 못하고. 오로지 흔들림만. 미동만. 동.물.적.인. 감으로.

 

유천은 준수의 몸이 슬슬 떨리는 것을 보고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가까스로 막았다. 저 탱탱한 엉덩이봐봐. 저렇게 증거를 떡 내놓고 있는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지? 유천은 조심조심 침대에 걸터앉았다. 요놈새끼. 그렇게 편하게 자고 있었더니 몸이 좀 풀리더냐? 난 심심해서 너만 마냥 기다리느라 지쳤구만.

 

준수는 도둑이(라고준수만생각한다) 침대에 앉았다는 것을 알자마자 큰 혼란에 빠졌다. 이 도둑을 그대로 뒤에서 기절시켜버릴까? 아냐아냐. 그전에 내가 잡히면 큰일이잖아. 그냥 이대로 있는게 안전할지도 몰라. 도둑도 내가 있는걸 모를꺼야. 물론 준수만의 생각이다.

 

유천은 가만히 앉아서 이대로 준수를 어찌할까 고민하고 있었다. 이대로 굴려버릴까? 하지만 이건 부작용이 좀 크다. 안그래도 이불속에서 꺙꺙대면서 홀로 더위와 싸움을 하고 있었을 텐데 거기다가 말아서 굴리기까지 하면 탈수증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어지럼증까지 플러스로 해주고. 그럼 어떻게 하지? 유천은 이불을 뒤집어 썼지만 그래도 드러나는 준수의 뒷태를 넋놓고 보고 있었다. 저 놈의 뒷태…. 유천은 가슴쪽을 쓸어내렸다. 무언가가 간질간질 거리는 느낌을 받은 유천은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왜이래? 그래도 그의 눈은 여전히 준수의 뒷태를 향하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 그리고 또 넋놓고 고민. 유천은 자신도 모르게 뒤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물론 그 흔들림은 준수는 벌벌 떨면서 이제는 아주 두렵다 못해 잡혀도 상관없으니 뒷통수를 때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를 벌벌 떨게 만드는 죄로 너의 뒷통수를 후려치겠다. 준수의 생각이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아, 그래. 이대로 뒤에서 엎어져 버려야지. 마침 유천도 고민을 끝낸 참이었다. 그리고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 자신도 모르게 기울어져가고 있었던 몸을 세우고 준수에게 조심 조심 엎드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준수가 꼼지락대며 일어나려고 하는 것이 유천의 눈에 포착되었다. 놀란 유천은 그대로 천천히 엎어지던걸 취소하고 아주 재빠르게 위에서 덮쳐버렸다.

 

 

" 으아아아아!! "

" …나 미쳤나봐 "

 

 

준수는 위에서 누르는 압박감에 숨을 쉬지 못하고 있었다. 비명을 내지르며 나오라고 작은 목소리로, 개미들만 들리는 목소리로 나오라고 하소연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런 준수의 상황을 모른 채 유천은 자신이 한 행동을 멍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분명히 준수는 답답할거야, 지금. 그리고 덥기도 하겠지? 충동적으로 나온 행동이라 유천은 생각의 움직임이 느리게 이동하고 있었다. 이성이 마비되었었나 보다. 이거 준수한테 미안한다. 그러나 유천은 여전히 준수의 위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었다. 준수는 계속 말을 걸었다. 나와. 나와. 나와. 나와. 나와. 나와.

 

 

" 아 맞다. "

 

 

이제서야 유천은 준수를 풀어주었다. 그리고 곧바로 느껴지는 뒷통수의 따가움.

 

 

" 악! "

" 이노오오옴!! 어디서 나를 깔고 뭉개? 어? 니가 한번 드러가 보라고! 뭐냐앙!!! "

" 아냐 준수야, 그냥 내가, "

" 죽어어어어어!!!!!!! "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장렬하게 유천이는 쓰러졌다. 준수를 말리고 있던 앞으로 내밀은 손은 위로 들어올려진 채로.

 

 

" …대한독립만세. 너는 순국을 했어, 유천아. "

 

 

준수의 말이 방안에 고요히 울려 퍼졌다.

 

 

 

 

 

 

 

 

 

 

" 아우우.. 아퍼라. "

" 깼냐? "

" 아 뭐야 김준수…. 너 내가 전화할 때 못들었어? 어? 내가 오라고 했잖아아~ "

" 근데 뭐. 어쩌라고오. 내가 자겠다는데 뭐어어!! "

" 뭐라니! 뭐라니! 내가 오라고, "

" 내가 잤다고. 졸려서 잤다고. "

" 그니까, 오라고 했는데…. "

" 내가 졸렸다니까안? "

" 응. 그래 준수야… 내가 잘못했어…. "

" 그래. 내가 졸렸으니까. "

" 그래…. 내가 깨우면 안되는거지…. 미안. 정말로. 죄송합니다. 그니까 이제 놀, "

" 유천아. 나 빵먹고 싶어. "

" 준수야 근데, "

" 빵사줘 "

" 무슨빵 사줄까? "

" 단거면 되~ 단거어~ "

 

 

유천은 마음이 뒤죽박죽 엉망이었다. 하지만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준수의 억지와 막무가내에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은 것이다. 짜증이 좀 나기는 하다만…. 그렇게 준수의 부탁아닌 부탁을 받고 빵을 사러 집을 나섰다. 오후 특유의 하늘이 유천을 반겼다. 보라색. 유천은 하늘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어째 너가 나의 속을 대변해주고 있는 것 같구나… 고마워….

 

유천이 나간 뒤, 준수는 항항대며 웃고 있었다. 집이 방음이 잘 되어있는 건지 아님 유천의 먹구름이 귀를 막아주고 있는 건지, 준수의 웃음소리가 유천이 나간 뒤로 바로 튀어나왔건만 안타깝게도 유천의 귀까지는 도달하지 않았다. 물론 들렸다면 유천은 울었을지도 모른다. 비련의 여주인공 처럼 눈물을 흩날리며 준수를 위한 빵을 사오겠지. 준수는 유천의 행동을 다시 한번 상기하며 웃었다. 아 진챠 바보가타 으항항! 왜이리 귀엽니!!

 

그 뒤로 몇초쯤을 더 웃은 후 준수는 거실로 나가 TV를 틀었다. 그리고 뜨는 것은 음악방송. 아 오랜만이다. 준수는 관심있게 음악방송에 집중하며 노래를 듣고 연예인들의 행동을 보았다. 역시 연예인들은 다르구나…. 머리까지 끄덕이며 음악방송을 보는 준수다. 그러다가 갑자기 똑바로 벌떡 앉는다. 쟤네 맘에 들던데! 아무도 없건만 혼잣말을 열심히 잘도 한다.

 

 

" 쟤네 노래 잘 부르던데… 특히 시아가 잘 부르는거 가태 "

 

 

아무도 답을 해주지 않았다.

 

 

" 음, 뭐. 믹키도 꽤 괜찮게 생겼네…. 체. "

 

 

이제는 방에서 베개까지 가져와 끌어안고 보고 있다.

 

 

" ……졸리다아아…. "

- 삑,삑,삑,

" 엥? "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준수는 쭈빗쭈빗서는 것 같은 머리카락들을 진정시키며 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박유천이다. 준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고 보니까 왜 저녀석이 우리집 비밀번호를 알고있는거지? 내가 알려줬었나? 아닌데… 알려준적이 없는데…. 준수의 눈은 의심으로 가득차 있었다. 이글이글 의심의 나라로 웰컴.

 

 

" 준수야아! 내가 빵사왔다아!! "

" 잘해써. 근데 말이야. "

" 자, 먹자. 응? "

" …너 비밀번호 어떻게 알고있는거야? "

" …응? "

"우리집 비밀번호말야. 비밀번호. "

" 아… 비밀번호? "

" 그래. "

" 다 아는 방법이 있지요~ 어서 먹자, 준수야. "

" 뭐야. 말해야지. 불안하잖아. 진짜 도둑들면 어쩌라구우… "

" 괜찮아. 내가 있잖아? "

" 유처니는 슈퍼맨도 아니잖아 "

" 난 슈퍼맨인데? "

" 얼씨구. 그럼 난 뭐냥? "

" 넌 돌고래지. 돌고래 지능도 꽤 높다? "

" ……유천이 생일빵 미리 할까? "

" 맛있게 먹어 준수야~ 어서 너가 먹어주길 바라는 빵들이 있단다~ "

" 그래야지. "

 

 

웰컴투 의심의 세계는 끝이났다. 하지만 유천의 속은 아직도 벌렁벌렁하며 뛰어대는 피를 공급하는 녀석이 있었다. 사실 유천이는 말을 돌려 준수가 비밀번호를 캐지 못하게 했다. 어떻게 알게 되었냐 하면, 준수가 비밀번호를 입력할 때 은근히 이런 쪽으로 머리가 비상한 유천이 어찌어찌 해서 비밀번호를 알아챈 것이다. 그 어찌어찌란 과연 무엇일까. 조금씩 유천의 피를 공급하는 기관이 벌떡벌떡 뛰던걸 늦추고 있었다. 유천은 100미터 달리기를 금 방 하고 온 사람처럼 준수몰래 뒤를 돌아서 숨을 헉헉 쉬고 있었다. 와씨 김준수 완전 의심 짬뽕이야 진짜. 와 엄청 놀랐다 준수야, 나?

 

그 머리가 비상한 유천의 어찌어찌방법.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준수가 비밀번호를 누를 때 안보는 척 하며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그러면서 조심조심히 알아채지 못하게 뒤로 간 것이다. 옷이 스치는 소리나 발이 움직이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게 아주 조심조심히. 그리고 헛기침 한번. 이때까지도 준수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저 친한 친구려니 하고 믿었던 것이겠지. 그래서인지 유천은 아주 손쉽게 비밀번호를 알아내었다.

 

유천은 지난날을 회상하며 헉헉거리고 있던 입의 꼬리를 올렸다. 씨익 하며 미소를 보이려고 한 것 같다만은 헤퍼보인다며 준수에게 오히려 한소리들은 유천이었다. 그래도 좋단다. 푸흐흐. 준수야, 준수야. 너는 내가 지킬게. 오빠만 믿어.

 

 

" 진짜 달다.. "

" 그치? 그치? 나 잘 골라왔지? "

" ……응. 꽤나 이런거에 소질있구나 너. "

" 푸헤헤 "

 

 

너 진짜 완전 장난아냐. 그렇게 웃으면 완전 바보같애 바보. 앞으로 너 박바보나 할래? 어? 준수의 질타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유천은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준수야 나는 너의 그 백치미가 정말 좋더라. 히히. 비밀번호 고마워~

 

 

" …누가 내 욕하나? "

" 응??? "

" 갑자기 귀가, 근질근질한거 같은게… "

" 에이~ 누가 우리 귀여운 준수를 욕을 하겠어~ "

" 누가 우리준수양! "

" 우리 준수는 준수지요~ 김돌고쭌쑤우~ "

" 야아아아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