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둑의 교훈성 - 

  우리 조상들은 바둑을 썩은 도끼자루라는 뜻의 "난가(爛柯)"에 비유했다. 흑백의 싸움이 신선놀음에 도끼자루가 썩는 줄 모를 만큼 흥미로워서 삼매경에 빠지게 된다는 의미인데, 바둑의 맛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비유가 전혀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것이다. 
아무리 많은 판을 두어도 끝없이 새로움을 창조해 내는 바둑의 신비한 매력은 수천 년의 역사 동안 바둑문화의 맥을 잇게 한 원동력이었고, 오늘날 서양인을 수담으로 이끄는 자력이 된다. 

  이처럼 강한 오락성과 아울러 바둑은 두는 이에게 어떤 교훈성을 체득하게 한다. 즉, 바둑수의 법칙 속에 생의 이치와 통하는 교훈적인 요소들이 들어 있어 바둑을 두는 동안 자연히 그것에 접하게 된다는 것이다. 바둑이 다른 두뇌적 게임과는 달리 '기도(棋道)'라는 고상한 이름을 갖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일 것이다. 

  바둑수의 법칙에는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고 중용의 덕을 갖추라는 수많은 교훈들이 들어있는데, 이러한 정신적 요소들은 유희적 게임으로 인식되어 온 바둑을 도의 경지로 이끈다. 이는 '자신을 절제하고 예를 행하라'면서 인(仁)을 강조한 공자, 마음을 비움으로써 번뇌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불가의 주장,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라는 도가의 사상 등과 맥을 같이 한다. 

  바둑의 도적(道的)인 속성으로 인해 사람들은 바둑을 두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정신적인 깨달음을 얻게 된다. 예컨대, 상대방의 대마를 기분에 따라 휘몰다가 자신의 돌이 역으로 쫒기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무리를 하면 역시 좋지 않구나."라든가 "상대가 약하다고 얕보는 것은 잘못이구나"와 같은 어떤 이치를 무의식 중에 깨닫게 된다. 
  또한 지나치게 굴종을 강요하는 상대방의 압제적인 행태에는 기백으로 맞서 그것을 억제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런 깨달음을 통해 바둑이 어딘가 모르게 인생살이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갖는다. 
  이와 같은 무의식적 깨달음은 어떤 의미에서 교육보다 더 값진 경험이 될 수 있다. 타의에 의해 어떤 길을 따르는 것보다 자신이 스스로 발견한 길을 가는 것이 훨씬 더 활기있고 유쾌한 일이기 때문이다. 바둑은 오락적 차원과 교훈적 차원을 공유한다.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정수현 9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