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유치원이 아이 망칠 뻔 했어요"

[오마이뉴스] 2007년 06월 08일(금) 오전 07:36
[오마이뉴스 이현숙 기자] 일곱 살 민이는 내 조카의 두 아이 중 큰 아이다. 그리고 제 엄마 또래들 중 제일 첫 번째로 태어난 아이라 매번 시험 대상이 되곤 했다. 내가 아이들을 보러 간 날, 민이는 탄천에서 인라인 레슨을 받고 있었다. 레슨 첫날이라 민이는 인라인을 신은 채 무척 엉성한 모습으로 발을 내딛고 있었다. 모든 것을 새롭게 배워가고 있는 중이라 태도는 좀 엉성했지만 신나 하는 몸짓을 보자 나도 덩달아 즐거워졌다.

민이가 인라인을 배우고 있는 사이, 민이 엄마와 나는 아이의 유치원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영어유치원에 들어갔다고 좋아하더니 불과 석 달 만에 일반 유치원으로 옮겼다고 한다. 나는 교육에는 일관성이 있어야 하는데, 이러다간 아이 교육이 잘못되는 건 아닌가 싶어 그동안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자세히 들어보았다.

내 조카 민이 엄마는 다른 엄마들 못지않게 교육열이 높다. 엄마라면 자기 자식에게 제일 좋은 교육을 시키고 싶은 게 당연지사, 무조건 조카만 탓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누구보다 자기 자식이 제일 잘돼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물불 안 가리고 교육에 투자하면서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라고 거침 없이 말하는 게 요즘 엄마들이니 말이다. 때문에 민이는 네 살 때 명성이 자자한 놀이학교에 들어갔다. 원비도 어린이집보다 두세 배나 비싸고 여기저기에 지점을 두고 있다는 명문 놀이학교였다.

교육열 높은 민이 엄마
그런데 민이가 놀이학교에 들어가고 몇 번 그곳을 방문해보던 민이 엄마는 아이 교육 문제로는 처음으로 갈등을 겪었다. 그동안 들어왔던 것과는 너무 차이가 났다. 명성이나 비싼 원비에 걸맞지않은 교사들의 수준, 그리고 점심과 간식도 눈에 띄게 부실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아이가 점점 놀이학교에 흥미를 잃어 간다는 점이었다.

고심 끝에 집 근처 미술학원으로 옮겨 보았다. 미리 수소문해서 미술학원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주위 사람들의 반응을 들어본 후였다. 그런데 예상 외로 아이가 좋아했다. 그 미술학원은 선생님과 늘 상담이 가능하고, 선생님이 자주 전화를 해 아이의 상태도 알려주는 등,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놀이학교에 비해 원비는 3분의 1 수준이었다. 민이는 미술학원이 마음에 들었는지 절대 다른 유치원은 가지 않겠다며 버텨 3년 동안이나 그 미술학원을 다녔다.

그리고 올해 초 민이는 영어 유치원에 들어갔다. 우리나라는 지금 영어교육 열풍이 거세다. 모두의 관심이 거대한 한 나라에 쏠려 있으니 당연하다고 느끼면서도 가끔은 마뜩찮은 눈길을 보내는 이 또한 적지 않다. 어려서부터 시켜야 제대로 한다는 영어, 그래서 생겨난 그 말 많은 영어 유치원에 들어간 것이다. 영어의 필요성을 누구 못지않게 실감하고 있던 민이 엄마는 진작에 좋다는 영어 유치원을 물색해 놓았다.

 
▲ 서울 강남의 한 빌딩. 학원과 병원들이 대부분이다.
ⓒ2007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그런데 영어 유치원을 가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 어떻게 아이의 마음을 돌리느냐와 영어 유치원에 가기 위한 선행학습이었다. 선행학습은 일 년 전부터 시작했다. 미술학원에 다니는 아이 중 마음이 맞는 부모들끼리 합의, 영어교사를 초빙해 매일 2시간씩 영어 교육을 시킨 것이다.

아이의 마음도 쉽게 돌려졌다. 지가 다니는 미술학원에 여자친구(?)가 있는데 그 아이와 함께라면 영어 유치원에 가겠다고 동의한 것이다. 누구보다 기뻐한 건 아이 엄마. 내 아이만 영어 유치원에 다니지 않아서 뒤떨어지는 것 같아 마음이 조급했었다고 한다.

아이를 무사히 영어 유치원에 보낸 엄마는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가끔 영어 유치원을 들락거리며 아이가 영어를 습득해가는 과정을 살펴 보았고, 매우 만족해했다.(그 유치원에는 언제나 아이가 공부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도록 유치원 휴게실에 CCTV가 설치돼 있었다)
영어 유치원은 수업료가 한 달에 85만원, 장소에 따라 1백만원을 호가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정원은 열 명이었다. 민이는 사전교육이 있었던 데다 뭐든 잘 따라 하는 편이라 조카는 CCTV를 보면서 아주 흐뭇했단다. 나더러도 민이가 공부하는 모습을 같이 가 보자고 할 정도였으니 얼마나 열광적이었는지 알만 했다.

그런데 갑자기 영어 유치원을 그만두고 일반유치원으로 옮겼다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겨우 4개월만인데. 그토록 아이도 엄마도 좋아했는데. 내가 도대체 뭐가 문제였느냐고 묻자 조카는 조목조목 문제를 짚어주면서 많은 엄마들이 이런 문제점을 알고 검토해서 올바른 선택을 하는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민이 엄마가 말하는 영어 유치원의 문제점
영어 유치원에서는 영어로만 말해야 말이 통한다. 친구들이야 저희끼리 한국말을 쓸 수도 있지만 선생님은 꼭 영어로 말을 해야만 반응을 하고 대답을 해준다. 그래도 아이들이랑 선생님이랑 둘러앉아 영어로 토론식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은 마냥 신기하고 기특해 보였는데 그 마음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수업시간뿐 아니라 일상적으로도 영어로만 소통을 해야 하는데 아이에겐 그 자체가 부담이었던 것.

영어 유치원에 다닌 이후로 아이에게는 많은 변화가 왔다. 교육적인 면에서 본다면 글씨를 흘려 쓰기 시작한 것이 큰 변화였다. 또박또박 그렇게 잘 쓰던 글씨를 아무렇게나 흘려 쓰고, 잘 쓰라고 지적하면 선생님도 그렇게 쓰는데 어떠냐는 식으로 항의를 했다. 마치 선생님이 그렇게 쓰는 걸 보니 멋있어 보여 나도 그렇게 쓰는 거라는 듯.

사실 그 나이 아이들은 선생님이 하는 것은 무조건 좋아 보이고 따라 하고 싶어한다. 선생님이야 어른이고 글을 잘 알기 때문에 괜찮지만 그 또래 아이들은 한글도 잘 모르면서 흘려 쓰는 습관부터 익혀서 좋을 게 없다.

또한 민이는 생활면에서는 전반적으로 예의가 없어졌다. 어른에게 공손하게 대하지도 않고 누구든(저보다 어른이든 아이든) 집에 방문을 하면 영화에나 나오는 식의 제스처를 해 보인다. 얼굴은 바라보지도 않은 채 손을 번쩍 쳐들고 '안녕'하고 아주 건방진 태도로 인사를 한다.

더구나 민이의 경우 짜증도 늘었다. 집에 오면 일단 가방을 내던지고 되는대로 벌렁 드러누워 짜증을 내기 일쑤였다고. 그러다가 아이는 차츰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아이의 변화를 보고 민이 엄마는 유치원을 옮길 생각까지는 안 했는데, 어느 날 유치원을 방문해 선생님과 아이들이 대화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 '아, 뭔가 잘못됐구나 하는 걸 느꼈'고, 그 순간 민이의 달라진 심성과 행동이 오버랩되면서 '이대로는 도저히 안되겠구나' 즉석에서 결심을 굳혔다고 했다.

외국에서 살다가 왔거나 집에서 줄곧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던 아이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게 영어 대화를 강요한다는 것은 무리였던 것. 그러니 민이는 말이 통하지 않자 대뜸 손짓 발짓, 즉 보디랭귀지를 시도한 것이다. '선생님과 이야기하려는 마음이 오죽 강했으면 저럴까?' 민이 엄마는 아이의 얼굴에 나타난 답답해하는 표정과 학부형에게 과시해 보려는 듯 멋지게 영어로 아이에게 질문을 던지는 선생님을 동시에 본 것이다.

그리고 '아이에게 좋은 교육을 시키려는 내 욕심이 잘못하면 아이를 망치겠구나' 생각한 것이다. 제 안에 털어내지 못한 말이 쌓여 욕구 불만이 되고 결국 집에 와서 짜증으로 폭발한 것을 늦게나마 발견한 것이다.

생각해보니 영어 유치원의 선생님들도 믿음이 안 갔다. 일반유치원 선생님들처럼 전인교육이나 인성교육, 즉 유치원 아이들이 습득해야 할 습관이나 친구들과의 관계는 조금도 고려하지 않고 오직 영어로만 수업을 꾸리는 걸 보니 선생님의 자질에도 의심이 갔다. 당연히 영어 유치원에도 정규 유치원교사가 있어야 하지만 아이들 교육시키는 걸로 봐서는 모두 그저 영어 선생님 같았다고 했다.

그런 상황을 파악한 민이 엄마가 학부형들에게 전인 교육에 대한 말을 꺼냈다. 그러나 엄마들은 요즘은 네 살부터 유치원을 다니니까, 그런 교육은 3년이면 충분하다고, 학교에 들어가기 전 일 년은 제대로 영어 조기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앞으로 중요한 건 영어라고, 영어만 잘하면 뭐든 잘할 수 있다는 식의 대답만 들었다.

거기다 한 술 더 떠 선생님에게 영어 숙제를 내 달라고 조르는 엄마가 있는가 하면, 영어 숙제를 내서 잘해 오면 스티커를 하나씩 붙여주고 나중에 그걸로 상을 주자는 엄마도 있었고, 영어 유치원으로는 부족하다며 별도로 과외를 시키는 엄마까지 있다고 한다. 참 이쯤 되면 엄마들의 집념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물론 민이 엄마는 영어 유치원이 영어를 배우는 데는 정말 도움이 되더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나이에 맞는 인성교육은 무시한 채 무조건 영어만 집중적으로 시키니까, 아이 심리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될까 봐 결국 도중하차했다. 인성교육이란 4, 5, 6세보다 7세 때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명칭을 영어 유치원이라기보다 영어 학원이라고 해야 맞는다고 말했다.

일반유치원으로 옮긴 후 달라진 민이
▲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인성교육이 더 중요하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2007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아무튼 민이는 겨우 영어 유치원을 탈출해 일반유치원으로 왔다. 민이는 이제 영어는 일주일에 하루만 하겠다고 하고 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일반유치원에만 다니겠다고 선언을 했다. 그리고 얼굴은 아주 신이 난 표정이다.

일반유치원 원비는 32만원. 영어유치원 반에도 못 미치는 가격이다. 난 아이의 얼굴에서 만족한 웃음을 보고 안심이 되었다. 몇 번 바뀌었지만 아이의 성격에 지장을 주진 않았구나 싶어서. 더 늦기 전에 판단을 빨리한 민이 엄마가 기특해 보였다.

인라인 레슨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민이가 할머니에게 자랑하듯이 말한다.

"할머니, 나 오늘 방울토마토 먹었다."
"그래서 어땠어?"
"아주 죽는 줄 알았지."
민이는 편식을 해서 토마토와 김치를 먹지 않는데 이 유치원에서는 먹기 싫어도 먹는 연습을 한 모양이다. 물론 억지로 먹었을 테지만 민이의 얼굴은 힘들었다거나 불만스러웠다는 표정이 조금도 없었다. 비록 찡그린 얼굴이었지만 자기가 방울토마토를 먹은 게 신기하다는 듯 웃어 보였다. 영어 유치원에 다닐 때는 집에 돌아오면 짜증부터 내기 일쑤였는데 자기가 싫어하는 방울토마토를 먹었다는데도 재밌어 한다며 할머니도 민이 몰래 웃으며 내게 말해 주었다.

일반유치원 정원은 26명이고 한 반에 정식교사 한 명과 보조교사 한 명이 배정돼 있다. 그리고 이 유치원에는 새로운 친구가 들어오면 유치원 생활에 잘 적응하도록 유치원에 익숙한 아이를 옆에 앉혀 도우미 역할을 하게 한단다.

그래서 익숙해지고 난 다음에는 다른 친구들과 똑같이 원아가 할 수 있는 일을 배정해 준다. 이를테면 점심시간이나 간식시간에 물 따라주기나 반찬 나눠주기 등을 해서 남을 배려하고 협동하는 마음을 길러주는 것이다. 작은 일이라도 남을 위해 하면 얼마나 기쁜지도 체험하게 하고, 팀을 만들어 놀이나 간단한 일도 거들게 한다. 친구들과 협동하면 놀이도 더 재밌게 할 수 있고, 일도 즐겁게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몸에 배게 해 주는 것.

그런가 하면 집안에서의 생활을 점검하기 위해 만든 사랑의 쿠폰도 있다. 부모님 심부름이나 청소, 밥하는 것을 도와드리면 부모님이 쿠폰을 주고 그 쿠폰을 선생님께 갖다 드리면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칭찬을 해준다. 그러면 아이들은 우쭐해지고 별것 아니지만 부모님을 도와드리는 게 좋은 일이라는 것도 깨닫는다고 한다.

뒷이야기
이 기사는 민이 엄마의 요청으로 썼다. 영어 유치원의 폐해에 대해 많이 듣긴 했지만 직접 겪어보니 정말 실감이 나더라며 많은 엄마들이 이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는 취지였다. 요청을 받았지만 어떻게 써야할지 용기가 나지 않아 며칠을 미루다 용기를 내었다.

기사를 마무리하고 영어 유치원 사진을 찍으려고 젊은 엄마들이 많아 교육 열풍 또한 거세다는 수도권을 돌아다녀 보았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영어 유치원이라는 간판이 보이지 않았다. 민이 엄마에게 전화해 물어보았더니 모두 유치원이라는 간판은 달지 않는다고 한다. 그냥 영어식의 이름이나 어학원이라는 이름으로 돼 있다고.

그래서 여기저기 알아보았더니, 어학원 간판을 달고 초등학교 저학년이나 중학교 아이들까지를 지도하는 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또 개별 건물이 있는 곳은 한두 곳뿐, 거의 큰 건물의 한두 개 층을 사용하고 있었다. 아침부터 오후까지는 유치부 아이들을 교육하고 학교 다니는 아이들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초등학교와 중학교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거의 유일하게 인성교육을 겸하는 곳이 있었다. 영어 유치원으로 불리기는 하지만 영어도 배우고 인성교육도 하는 유치원이었다. 그 유치원의 한 달 원비는 120만원. 그런데 학부형들의 원성 또한 만만치 않았다. 인성교육을 하다 보니 영어는 뒷전. 그럴 거면 일반유치원을 보내고 영어를 따로 학습시키는 게 낫지, 뭐하러 비싼 돈 들여가며 영어 유치원에 보내느냐는 나름대로 이유 있는 항변이었다.

그런가 하면 4세 때부터 영어 유치원에 보낸 한 엄마는 유치원에서는 모두 영어로 말하는데, 밖에 나와서는 모두가 한국말을 하고 저만 영어를 쓰게 돼 아이가 무척 혼란스러워한다는 고민을 했다.

몇 년 사이 강남이나 수도권을 중심으로 우후죽순 영어 유치원이 생겨났다. 그러면 당연히 영어 유치원을 나온 아이들도 많아졌을 텐데 그 아이들이 다 영어권으로 이민을 가거나 영어를 사용하는 국제 학교에 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많은 아이들이 다 앞의 아이와 같은 혼란을 겪어야 할 것이며, 그러고도 일반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그동안 배운 영어는 결국 허사가 되고 말 것이다.

취향도 성향도 다른 아이들을 부모의 열망대로 무조건 영어 속으로 몰아넣는다고 아이의 앞길이 열릴까?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아이가 올바로 성장했을 때에야 비로소 필요한 것인데, 삐뚤어진 교육으로 아이가 올바로 성장하지 못한다면 힘들게 배운 영어일지라도 한갓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다. 엄마들의 판단 기준이 무엇인지 문득 궁금해졌다.

물론 영어가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아이에게 수준 높은 교육을 시키려는 엄마들의 열망은 공감한다. 그러나 어려서 몇 년 영어를 익혀 일반학교에 보내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는지, 모든 엄마들이 깊이 한 번 생각해 보고 올바른 결정을 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이현숙(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