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고수 = 출세, 태국은 ‘바둑 천국’  


태국 바둑 붐이 폭발적이란 소리를 들은 지 어언 2년. 때마침 맥심배 입신최강전 결승 1국이 태국바둑협회 초청으로 방콕 인근에서 열리게 되어 이 팀에 합류하게 됐다. 결승전의 주인공인 목진석 9단과 박영훈 9단 외에도 TV 해설과 지도 다면기를 위해 조대현(9단) 기사회장 등 6명의 프로기사가 동행했고 TV 중계팀까지 일행은 20명이 넘었다.



그러나 비행기를 타고 가는 동안에도 ‘태국 같은 무더운 나라에서도 ‘생각하는 게임’이 번창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체스는 전통적으로 러시아가 강국이고 바둑도 찬바람 부는 한·중·일이 독무대를 이루고 있다. 유럽 쪽은 모든 나라가 바둑을 두지만 아랍 쪽은 바둑이 전무하다. 하지만 다시 더듬어보면 고대 인도에서 생겨난 보드게임이 서쪽으로 가서 체스가 되었고 동쪽에선 장기가 되었다니 ‘생각하는 게임’과 ‘기후’의 연관성은 편견에 불과할 수 있다. 바둑만 해도 중국이 아니라 인도 지역의 시킴 왕국에서 처음 시작되었다는 설이 유력하게 대두되고 있지 않은가.



1일 오후 3시, 호수와 연꽃이 어우러진 휴양지의 몸차이라이 호텔에서 대국이 시작됐다. 지도대국을 받으러 각지에서 모여든 태국 강자들이 도열한 가운데 마치 세계대회 같은 성대한 개막식을 치른 끝에 목진석-박영훈의 맥심배 결승 1국이 열린 것이다. 한국랭킹 4위인 목진석은 지난해 116승을 거두며 이창호 9단의 연간 최다승 기록을 14년 만에 깨뜨린 당사자.



그러나 정작 타이틀이 하나도 없어 “2008년은 다승이 아니라 우승이 목표”라고 공개 선언했고 드디어 첫 결승전을 두게 됐다. 난타전으로 흐른 대국은 백을 쥔 목진석이 허를 찌르는 수상전의 묘수를 찾아내면서 백 불계승. 한국랭킹 3위의 박영훈은 얼마 전 삼성화재배 결승전에서 이세돌 9단에게 패배한 후유증을 아직 씻어내지 못한 듯 보였다(2, 3국은 8~9일).



태국은 15년 전 대학을 중심으로 바둑을 보급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초등학교는 물론 유치원에서도 바둑을 가르치고 있다. 바둑 인구는 무려 220만 명. 한·중·일을 제외하면 세계 최대다.



태국 바둑이 이렇게 급성장한 것은 순전히 코삭(Korsak)이라는 한 재벌의 열정과 힘의 결과라는 것을 이곳에 와서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태국에는 어디를 가나 세븐일레븐이란 편의점 천지인데 코삭은 이곳 회장이고 CP그룹 부회장이자 태국바둑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회사의 CEO들을 바둑에 투여하고 있는데 사장단 중 스윗 킹커우는 태국바둑협회 사무국장이고 완타니 여사는 협회 부회장이다.

태국에선 바둑 고수에 대한 대우가 상상을 초월한다. 아마 3단 이상만 되면 6개의 일류 대학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들어갈 수 있고 아마 1단 이상의 졸업자는 60여 개 대기업을 골라서 들어갈 수 있다니 일자리로 난리인 한국을 생각하면 바둑 천국이나 다름없다. 이리하여 태국은 200여 개 대학에 바둑팀이 있고 대학 대회를 열면 100개 대학 이상이 출전하는 특이한 나라가 됐다. 솔직히 35도가 넘는 무더위 속에서 나른해진 머리로 바둑판에 집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으나 태국은 바둑=출세라는 공식과 함께 나날이 발전할 수 있는 고속도로가 깔린 셈이다.

이런 상황을 만들어낸 인물이 바로 코삭이다. 그는 또한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올림픽이라 할 수 있는 ‘SEA GAMES’에 바둑을 포함시킨 인물이다. 비록 전시종목이지만 국제대회 사상 바둑에 메달이 수여된 것은 이 대회가 처음이다.

지난해 12월 열린 24회 SEA GAMES에 초대받아 다녀온 명지대 바둑학과 남치형 교수는 “이 대회를 통해 2008년 10월 베이징에서 열릴 1회 세계마인드스포츠대회와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바둑 종목을 어떻게 치러야 할지 감을 잡았다”고 말한다.

바둑의 불모지라고 여겨온 동남아시아에서 세계 최강 한국이 오히려 한 수 배운 셈이다(동남아 바둑은 싱가포르에 가장 먼저 보급되었고, 베트남은 신흥 강국이며,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브루나이·필리핀 등이 협회를 가지고 있다. 남녀 개인과 혼합복식 3종목이 치러져 싱가포르와 태국이 금메달을 나눠 가졌다).

역시 지난 1월, 완타니 부회장의 초청으로 태국의 아시아 청소년 바둑대회에 다녀온 김미라(명지대 대학원 바둑학 석사과정)씨는 무엇보다 태국의 바둑 교육에 크게 감동했다고 전한다. 초등학교는 대부분 사립이나 명문 학교에서 선택받은 학생 중심으로 바둑 교육이 이뤄지고 있는데 세븐일레븐의 전폭적 도움이 원동력이라고 한다.
“바둑을 잘 두면 일도 잘할 수밖에 없다”는 게 코삭 회장의 신조였다. 그가 만들어내는 태국 바둑, 동남아 바둑의 변화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궁금하다.


방콕=박치문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