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선비 이야기


  지금으로부터 약 500년 전, 조선시대 때 이야기입니다. 바둑은 아주 오래 전에 생겨났기 때문에 조선시대 뿐 아니라 그 전의 고려시대, 삼국시대, 그 이전에도 있었다는 역사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한 마을에 바둑을 아주 좋아하는 부잣집 대감님이 있었습니다. 너무 바둑을 좋아해서 바둑 고수라면 누구든지 집에 초청을 해서 후하게 대접을 하곤 했습니다. 거의 매일 대감님의 사랑방에는 바둑 두는 소리가 끊이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과거시험을 며칠 앞둔 때였습니다. 한 젊은 선비가 저 멀리 남쪽 지방에서 며칠을 걸려서 한양으로 올라가던 차였습니다. 이제 하루만 더 가면 한양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만 가지고 있던 노잣돈이 다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아주 곤란한 처지가 된 것이죠. 선비 체면에 길바닥에서 잘 수도 없는 노릇이고, 산 속에는 호랑이와 산적들도 있던 때였습니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선비는 겁이 났습니다. 
  그러던 차에 그 바둑을 좋아한다는 대감님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선비는 바둑을 전혀 둘 줄 몰랐지만 다급한 마음에 대감님 댁으로 달려가 대문을 두드렸습니다. 대감 댁 하인은 선비를 일단 사랑방으로 안내했고 잠시 후 대감님이 오셨습니다. 
  대감님은 “먼 길을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겠습니다. 그런데, 선비님께서는 바둑을 둘 줄 아십니까?” 라고 다짜고짜 물었습니다. 
  선비는 대감님에 대한 소문을 들은 터라 짐짓 바둑을 둘 줄 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대감님은 안색이 밝아지면서 “아 그렇습니까? 오늘 귀한 손님이 오셨군요. 마침 바둑 둘 상대가 없어서 심심하던 차였습니다. 오늘은 좀 늦었으니 제 집에서 편히 주무시고 내일 떠나시기 전에 한 수 가르쳐주시겠습니까?” 하였습니다. 
  선비는 다급한 처지이므로 그러겠노라고 일단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대감님은 하인들을 시켜 진수성찬을 준비하고 따뜻하고 좋은 방으로 선비를 모시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 방에는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선비 한 명이 더 있었습니다. 젊은 선비는 잠자리에 누웠으나 걱정으로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젊은 선비는 지금까지 바둑알이라고는 한 번도 잡아보지 못해봤기 때문입니다. 내일 아침 거짓말한 것이 들통 나면 큰 곤욕을 치를 것이 뻔했습니다. 그런 걱정에 이리뒤척 저리뒤척하며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마침 같이 묵게 된 나이 많은 선비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저.. 선비님, 혹시 바둑을 둘 줄 아십니까?” 
그러자, 나이 많은 선비는 짐짓 헛기침을 하더니, 
  “조금 둘 줄 압니다만..”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럼, 잠도 오지 않고 하는데, 바둑이나 한 수 하실까요? ”
  “허..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나도 잠자리가 낯설어서서 그런지 잠이 잘 안오는구려. 하하”
  그런데, 이런 황당한 일이 있을까요? 아주 공교롭게도 나이 많은 선비도 바둑을 전혀 둘 줄 몰랐습니다. 젊은 선비와 똑같은 처지였던 것이지요. 그리하여 난생 처음 바둑돌을 잡는 두 선비가 바둑판을 앞에 놓고 마주앉았습니다. 
  나이 많은 선비가 먼저 말했습니다. 
“저기.. 젊은 선비님께서 먼저 두시지요.”
젊은 선비는 
“그, 그러지요. 허험..” 하고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잠시 머뭇거렸습니다. 그러다가 엣따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흑돌 하나를 무식하게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잡고는 큰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조선은 천하의 중심이오.” 하고는 가운데 천원에 딱하고 놓았습니다. 처음 보기에는 제법 폼이 그럴듯해 보였습니다. 
그 다음은 나이 많은 선비의 차례였습니다. 나이 많은 선비도 조금 머뭇거리며 생각을 하다가 역시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큰소리로, 
“한양은 조선의 중심이오.” 하고는 백돌 한 개를 흑돌 위에 딱하는 소리와 함께 올려놓았습니다. 
  그러자, 젊은 선비는 속으로 ‘아, 바둑이라는 것이 별 것 아니구나, 바로 돌쌓기로구나.’ 라고 쾌재를 불렀습니다. 그러고 보니 동네 아이들끼리 바둑돌을 가지고 돌쌓기 놀이를 하던 것을 본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습니다. 이렇게 되어 젊은 선비와 나이 많은 선비는 그 다음부터는 서로 열심히 돌쌓기를 하면서 밤을 새웠습니다. 
  이윽고 아침이 되었습니다. 
아침상을 또 거나하게 대접받고 나서 두 선비는 대감님과 마주앉았습니다. 대감님은 아주 반가워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간밤에 잠은 편히 주무셨습니까? 이제 두 분 선비님 중 누가 저와 한 수 하시겠습니까?” 
  그러자, 나이 많은 선비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밤새 수백 판의 바둑을 두었는데 아무래도 젊은 선비가 저보다는 한 수 위인 듯 합니다. 젊은 선비와 한 수 하시지요.” 
  그 말을 들은 대감님은 약간 당황했습니다. ‘바둑이 얼마나 고수이길래 밤새 수십 판도 아니고 수백 판의 바둑을 둔단 말인가?’ 그러나, 선비들의 의기양양한 표정을 보니 거짓말은 아닌 듯싶었습니다. 대감님은 
  “두 분이 엄청난 고수님들이신가 봅니다. 그럼 한 수 지도바라겠습니다. ” 하고는 얼른 흑돌을 잡고는 우상귀 화점에 놓았습니다. 그러자, 젊은 선비는 잠시 머뭇거리며 생각을 했습니다. ‘왜 하필 가운데를 놔두고 이쪽 구석에 돌을 놓지? 거참, 귀찮게시리..’ 하고는 백돌을 잡고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조선은 천하의 중심입니다 ”  
  그러고는 한 번에 척하고 흑돌 위에 돌을 얹어놓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대감님은 이런 황당한 상황에 매우 놀랐습니다. 그런데, 두 선비의 얼굴은 너무도 당당한 것이 아닙니까? 대감님은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얼굴이 빨개진 채, 속으로 고민했습니다. 그러더니 이내 뭔가 깨달았다는 듯이 갑자기 머리를 숙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이고, 제가 두 분 고수님께 실례를 했습니다. 한양에서 과거시험보고 시간 되시면 다음에 한 번 더 들러 주십시오.”하며 노잣돈까지 두둑이 챙겨주고 멀리까지 배웅했습니다. 
  대감님 생각에는  흑돌 위에 올려진 백돌이 ‘새까만 하수인 주제에 감히 깔지도 않고 맞두려 하는구나’ 라고 호통을 치는 것으로 들렸던 것입니다. 
  그 후에 두 선비가 과거시험이 끝나고 대감님 댁을 다시 찾았는지는 전해지는 바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