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화의 색상은 흑백 두가지가 기본이다

바둑에서도 흑백은 기석의 기본 색상이다

옛날에 비취같은 보석으로 만든 적색과 청색의 바둑알을 사용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는 귀족계층에서 사치스러운 애완물로 만들었던것이지, 결코 바둑알의 보편적 가치를 지닌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동양화의 색상은 흑백 두가지가 기본이다 무한대의 공간을 상징하는 듯한 순백색의 화선지 위에 짙은 검정색과 엷은 회색을 조화시켜 그려진 동양화의 그윽한 유현미(幽玄美)는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끌게 한다. 퍽 오래전에 어느 서양화가가 말하기를 수많은 색채 중에서 흑(黑)과 백(白)이 가장 좋은 색깔이라고 했다. 바둑에서도 흑백은 기석(碁石)의 기본 색상이다. 만약에 두 사람이 바둑을 두는데, 두 종류의 다른 색상의 바둑알을 갖추면 된다는 조건만을 충족시킨다면 반드시 흑백이 아니더라도 상관없지 않겠는가. 즉, 적색과 청색 또는 청색과 황색 등으로 바둑알을 만들어도 될 것이다.

실제로 옛날 중국에서마노와 비취 같은 보석으로 만든 적색과 청색의 바둑알을 사용했던 사람들이 있었고 상아(象牙)로 만든 바둑알을 감색과 홍색으로 물들여 그 표면에 섬세하게 조각한 보물급 바둑알이 일본 나라(奈良)에 있는 정창원(正倉院)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러한 진품(珍品)들은 옛날 황실이나 귀족계층에서 사치스러운 애완물로 만들었던 것이지 결코 바둑알의 보편적 가치를 지닌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어찌하여 바둑알의 색상은 흑색과 백색으로 만들어졌는가.

일반적으로 색깔에는 색상(色相), 명도(明度), 채도(彩度)의 3요소가 있다.

예를 들면 붉게 물들은 단풍잎, 누렇게 익은 벼이삭 등과 같이 표현되는 색깔이 색상이고, 명도는 색의 밝기, 채도는 책의 선명도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데 흑색과 백색에는 색상과 채도는 없고 명도만 있다고 하는데 이 점만 유의한다면 대체적으로 흑백은 다른 색상과 무난하게 조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여성의류에서 검은색 스커트에는 여러 가지 색깔의 블라우스가 어울리고 남성의 흰 와이셔츠에는 모든 색깔의 신사복이 어울리는 것이다. 또한 어떠한 스타일이나 개성을 갖춘 여인에게도 검은 상복과 흰색의 결혼의상이 잘 어울리게 되어 있는 것이다.

흑색과 백색은 모든 색깔의 명도(明度)의 양단에 위치하여 원초(原初)의 색, 색의 원조(元祖)라 할 수 있다.

고대인들은 이러한 흑백의 성질을 이론이 아닌 실감으로 체득한 것 같다. 그들에게서 흑과 백에 연계되는 낮과 밤, 양(陽)과 음(陰), 명(明)과 암(暗)은 자연계, 인간세계에 있어서 일체의 대비(對比)의 기본이었다는 까닭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역(易)의 원리가 그 가운데 있는 것이다.

흑과백은 동양문화의 정수를 나타내는 색상이라 할 수 있다.

바둑알과 바둑판의 색상조화도 일품, 검은색돠 노란색은 잘대조되는 색깔이며 백색과 황색의 대조미도 보기에 좋다.

특히 대합껍질의 흰 바둑알은 조개알 특유의 독특한 색상으로 비쳐지니 아름다운 색채미를 음미할 수 있다.

흑백(黑白)의 색깔에 대해 한국 중국 일본의 국민들이 생각하는 인식에 다소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백의민족이라 하여 흰색을 숭상하여 왔다. 몽골인들도 백색을 순결 결백의 상징으로 인식하여 흰옷, 백색의 겔(몽고 천막), 백탑(白塔) 등 신앙적 색깔로 그들의 의식 속에 정착돼 왔으며, 이른바 몽골인들의 백색문화 풍속을 생생하게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흑백의 관념을 살린 예술이 서양보다도 동양에서 훨씬 더 앞서온 까닭은 아무래도 한자(漢字)문화 때문인 것 같다.

서양의 표음(表音)문자인 알파벳으로 서예를 탐구할 수는 없다.

표의(表意)문자인 한문은 한 글자만으로도 필치를 음미할 수 있기 때문에 서도(書道)예술이 존재하는 것이다.

검은 먹과 흰 종이의 대조미(對照美)는 한문글자의 상형성(象形性)과 어우러져 자연히 서도에서 수묵화(水墨畵)로까지 트이게 된 것이다.

따라서 흑과 백은 동양문화의 정수를 나타내는 색상이라 할 수 있다.

옛날부터 금세기 초까지 중국에서 바둑을 둘 때 상수(上手)가 흑돌을 잡는 관습이 있었다.

흑(黑)은 현(玄)으로 통하는데 '검을 현', 즉 검은색이라고는 하지만 칠흑과는 다른 붉은기가 감도는 흑색이 현(玄)의 색깔이라고 한다.

현은 하늘의 색이며 심오한 색이다. 옛날 중국에서는 흰 옷은 무위무관(無位無冠)한 평민의 복색이고 백의(白衣)를 입은 백인(白人), 백정(白丁)은 보통 사람이라는 뜻을 함축한다. 그래서 바둑의 상수가 집흑(執黑)을 하고 하수(下手)가 집백(執白)을 하는 대국습관이 오랫동안 지속돼 왔었다.

일본말에 시로우도(素人)와 구로우도(玄人)란 용어가 있다. 바로 흰 사람, 검은 사람이란 뜻이지만 소인은 취미적 애호가, 즉 아마추어를 뜻하고 현인은 직업적 전문가, 즉 프로를 뜻한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오래 전부터 똑같이 바둑의 상수가 집백을 하고 대국해 왔다.

일본에서는 흰색이 상서로운 색깔이고 때묻지 않은 청순무구한 색으로 숭상되어 왔다.

한국에서도 같은 맥락으로 백의민족임을 자랑스럽게 인식해 왔으며,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가 가지 않기를 바라는 심경을 읊은 시조도 있다. 바둑알과 바둑판의 색상조화도 일품이다.

비자나무, 은행나무, 스푸르스 등 고급 기반재(棋盤材)의 색상은 엷은 노란색이다.

검은색과 노란색은 가장 잘 대조되는 색깔로서 철도 건널목이나 도로교통 표지물에 많이 쓰인다.

백색과 황색의 대조미도 보기에 좋다. 특히 대합(大蛤) 껍질로 제작된 흰 바둑알은 청정한 유백색(乳白色)이 바탕색깔이면서 빛의 각도에 따라서는 엷고 은은한 황색과 은회색이 곁들여져 조개알 고유의 독특한 색상으로 비쳐지니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색채미를 음미할 수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