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원 뒷이야기

이승만 전 대통령에 한국 최초 명예 9단 '상납'



한국 최초의 초단은 조남철이다. 그렇다면 한국 최초의 9단은 누구일까.

다름 아닌 이승만 전 대통령이다. 한국기원이 1960년 3월, 새로 대통령이 된 이승만의 생신을 기념하여 '돈 안 드는 좋은 선물'로 9단을 바친(?) 것이다.

셋방살이를 전전하던 한국기원이 어떻게든 건물을 얻어보고자 묘수를 낸 것인데 이로부터 불과 23일 만에 4.19가 일어나 모처럼의 묘수도 물거품이 됐다.

해방 직후였던 1945년 11월, 일본에서 프로 초단을 따고 돌아온 22세 청년 조남철은 서울 남산동에 '한성기원' 간판을 내건다. 한국 현대바둑의 시작이다. 그러나 가난했던 재정 탓에 셋방살이 기원은 자주 이사를 다녀야했다.

정부수립의 혼란기에 6.25까지 겪으며 기원 간판도 한성기원에서 조선기원으로, 다시 대한기원으로 바뀐다. 1954년엔 한국기원이 발족되고 초대 이사장에 이승만 정부의 실력자였던 장경근씨가 취임한다.

바둑계의 내집 마련의 꿈을 실현해준 인물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비서실장과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이후락씨다. 이사회 중심의 한국기원은 총재라는 직함을 신설, 이후락씨를 초대 총재로 영입했는데 이후락씨가 그 정성에 화답하여 건설회사를 동원,1968년 종로구 관철동에 5층짜리 건물을 지어준 것이다.

이후락씨는 한국기원 재정의 어려움을 하소연하는 중진 프로기사들을 집으로 데려가 지하실에 그득한 미술품을 보여주며 마음놓고 가져다 팔아서 쓰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밖에서는 독재의 하수인으로 욕을 먹기도 했으나 한국기원에만 오면 기립박수를 받곤 했다.

두 번째 총재는 대우의 김우중 회장. 김우중씨는 프로기사들을 대우 계열 회사는 물론 타 기업에도 사범으로 취업시켜 생활을 안정시킨 공로가 컸다. 또 현재 한국기원이 있는 홍익동 건물을 기증하기도 했다. 바둑을 좋아한 그는 외국 출장 때 소속 사범인 서능욱 9단과 동행하며 비행기에서 바둑을 두기도 했다.

한국기원은 김우중씨가 해외로 도피하여 소식이 없을 때도 근 2년간 총재 직함을 그대로 놔뒀다."세상이 다 김우중씨를 욕해도 한국기원은 그래선 안 된다"며 의리를 지킨 것이다. 김우중씨는 2000년 12월까지 17년여 동안 총재를 맡았다.

지난 6월,김우중씨가 귀국할 때 한국기원은 임선근 사무총장과 서능욱 9단 등 몇 명이 공항에 마중을 나갔다. 분위기 때문에 플래카드는 고사하고 한쪽에 가만히 서있다 얼굴도 못 보고 돌아왔다고 한다.

현재의 한국기원은 한화갑 총재와 허동수 이사장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민주당 대표인 한화갑씨는 '바둑의 스포츠화'를 위해 힘을 쏟고 있다. GS칼텍스 대표이사이자 오너인 허동수 이사장은 세계 최강이 된 한국바둑의 실질적인 선장 역할을 맡고있다. 그는 이미 너무 비좁아진 한국기원의 새로운 회관 건립을 위해 서초동 금싸라기 땅을 내놓기도 했다.


박치문 전문기자



중앙일보 (DATE / 2005-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