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의 전래


바둑의 역사는 유구하다. 그래서 전래과정도 분명치 않다. 바둑이 중국에서 한반도로 전해졌고 다시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전파되었다는 게 통설로 되어있으나 과연 어느 시대에 들어왔는지 정확한 문헌의 기록이 없다.

또한 옛날 한·중·일 3국은 바둑 두는 법이 서로 각각 달랐다. 중국 바둑사에 전해오는 당(唐)·송(宋)시대의 기보를 보면 바둑을 시작할 때 대각선 귀의 화점에 흑·백이 두 점씩 미리 놓고 백의 선수로 시작하며 때로는 흑선수로 시작하는, 이른바 좌자기(座子棋)가 두어졌고 우리나라에서는 귀와 변과 중앙에 17개의 돌을 사전에 배치한 뒤 백의 선수로 시작하는 순장바둑(巡將棋)이 두어졌으며 일본에서는 사전치석(事前置石)이 없는 현대식 자유포석법으로 바둑이 두어졌다. 그래서 고대의 중국 바둑판에는 4귀와 중앙에 5개의 화점(花點)만 찍혀 있고 고대 우리나라의 바둑판에는 17개의 화점이 표시되어 있으며 일본의 바둑판에는 9개의 성점(星點)이 그려져 있었던 것이다.


한국의 순장바둑
중국의 좌자기
일본의 자유포석법


한국의 순장바둑 중국의 좌자기 일본의 자유포석법

그렇다면 우리나라 고유의 순장바둑은 과연 언제부터 두어지기 시작했고 일본의 자유표석법은 또 언제 어디서 유래된 것일까? 여러 가지 의문점들이 제기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확실한 기록이 없다.

바둑의 한반도 전래설에는 기자동래설(箕子東來說)과 한사군설(漢四郡說) 두 가지가 있다.

기자동래설이란 한서지리지(漢書地理志)에 근거하는 설로서 기원전 12세기 무렵 주(周)나라 무왕이 은나라의 폭군 주(紂)왕을 멸망시키고 주나라를 세운 뒤 현인 기자(箕子)를 조선왕으로 책봉하여 단군조선의 뒤를 잇게 했는데 당시 기자가 부하 오천 명을 거느리고 조선에 올 때 학술·기예 등 각 분야에 훌륭한 인재들이 기자를 따라와 조선에 문화를 전파했으며 그 중에 바둑 두는 사람이 있어 한반도에 바둑을 전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한사군설이란 중국 한나라 무제가 군사를 보내어 당시 조선을 통치하던 위만의 손자 우거왕(右渠王)을 멸망시키고 위씨조선의 옛 땅에 낙랑·진번·임둔·현도 등 4개의 군현을 설치했는데 그 시절 한인 관리와 상인들이 내왕하면서 바둑이 전해졌을 것이라는 설화이다.

그러나 기자동래설은 한족이 한사군을 지배할 당시 그들의 통치를 합리화시키기 위해 억지로 조작한 게 아닌가라고 의심하는 역사학자도 있고 위만에게 멸망당한 기자조선의 마지막 임금 준왕의 성이 한(韓)씨였다는 점으로 미루어 한씨정권이 권위를 세우기 위해 기자를 참칭(僭稱)했다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으므로 기자조선시대에 바둑이 전래되었다는 설은 신빙성이 부족하며, 한사군시대 바둑전래설이 근사하게 느껴지지만 이것 역시 확실한 문헌의 근거는 없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삼국시대에 이미 바둑이 성행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옛날 중국의 역사책 <북사(北史) 백제전>,<주서(周書) 백제전>,<수서(隋書) 동이전> 등에는 「백제의 풍속에 투호·저포 등 여러 가지 놀이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 바둑을 가장 숭상했다」,『有投壺, 樗蒲等雜戱然, 尤尙奕棋』고 기록되어 있고, <구당서(舊唐書) 고려전>, <신당서(新唐書) 고려전> 에는 「고구려 사람들이 바둑과 투호놀이를 좋아했다」고 적혀 있다.
고구려인들이 바둑과 함께 즐겼던 투호
(자료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그리고 <신당서 신라전>과 <구당서 신라전>에는 당나라 현종이 신라에 사신을 보낼 때 신라인들이 바둑을 잘 두므로 바둑을 잘 두는 인물 솔부병조참군 양계응(楊季鷹)을 부사로 삼아 보냈다는 이야기가 적혀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삼국시대 훨씬 이전 한사군시대에 바둑이 한반도에 전래 되었을 것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